[세기와더불어 독후기] 1장 비운이 드리운 나라 7. 유산

어머니 강반석 여사로부터 아버지 김형직 선생이 쓰시던 두 자루의 권총을 물려받는 김일성 주석.
어머니 강반석 여사로부터 아버지 김형직 선생이 쓰시던 두 자루의 권총을 물려받는 김일성 주석.

1925년 김형직 선생은 국내조직과의 연계를 위해 팔도구의 대안인 포평으로 건너갔다가 밀정의 밀고로 매복 경관들에게 체포되었다. 김형직 선생은 황씨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했으나, 가둑령의 조낟가리 속에서 며칠간 은신하는 동안에 하반신이 다 얼어들어 난치의 병을 얻게 되었다. 압록강이 얼자 장대기를 놓고 밀면서 도강하는 과정에서 재차 동상을 입었고, 결국 1년 후 무송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김형직 선생이 임종 직전까지 온 힘을 다해 추진한 것은 민족유일당 창립이었다. 당시 민족해방투쟁진영에는 공산주의가 새로운 사조로 대두하였고, 민족주의 진영의 많은 선진분자들이 공산주의 운동에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었다. 민족주의 진영이 방향 전환을 지지하는 혁신파와 반대하는 보수파로 분해 과정이 진행되고 있을 때, 혁신파의 선구자가 바로 김형직 선생이었다. 김형직 선생은 방향 전환을 통일적으로 영도하기 위한 조직으로 민족유일당을 구상한 것이다.

그 첫 사업으로 김형직 선생은 길림시 북산 밑 박기백의 집에서 이른바 우마항 회의를 소집하였다. 회의 참가자는 양기탁, 현하죽, 오동진, 장철호, 김사헌, 고원암, 곽종대 등 독립운동의 원로들과 중견인사들이었다. 그들은 독립운동을 통일적으로 영솔할 수 있는 정치단체의 필요성을 한결같이 인정하고, 가까운 장래에 모종의 유일당을 창립할 데 대한 결정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당의 명칭은 고려혁명당으로 결정하였다.

고려혁명당은 우마항 회의 1년 후 결성되었다. 고려혁명당 결성에는 우마항 회의 참가자들, 국내 천도교 혁신파 대표, 형평사 대표, 연해주에서 온 대표들이 연석회의를 열고 함께 하였다. 고려혁명당의 강령은 현금의 사유재산 제도를 소멸하고 현존한 국가조직을 철폐하여 공산제도에 의한 세계 단일국가 건설을 당의 사명으로 명시하였다. 다만 김형직 선생은 이미 병이 깊어 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김형직 선생은 목숨을 바쳐 고려혁명당의 산파 역할을 한 것이다.

고려혁명당 결성을 위해 김형직 선생은 생의 말년을 고스란히 바쳤다. 당시 동북 3성에 할거하고 있던 여러 갈래의 군소 독립운동단체들은 3부로 통합되어, 만주에는 정의부, 신민부, 참의부 3부가 존재하는 새로운 시기가 도래하였다. 그런데 이 3부도 세력권 확장을 위한 파쟁을 일삼아 민중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었다. 이런 정세 하에서 김형직 선생은 통일단결이야말로 분초를 다투는 역사적 대과제라는 것을 확신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19258월에 무송에서 국내외의 조선국민회 대표들, 무장단체 대표들과 함께 독립운동 대열의 통일단결을 위한 대책을 토의하고 민족단체연합촉진회를 결성하였다. 김형직 선생은 이 촉진회를 움직여 민족유일당 창립을 앞당기려 한 것이다.

고려혁명당 결성을 앞당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쏟았던 김형직 선생은 1926년 봄부터는 완전히 병석에 매인 몸이 되었다. 선생은 병석에서 병문안을 받으면서도 찾아오는 독립운동가들에게 통일단결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였다. 병문안 온 오동진과 장철호에게도 통일단결을 당부했던 선생은 그들이 돌아가자 김성주에게 파쟁은 국력을 쇠진케 하는 근원이고 외세를 끌어들이는 매개자이다, 외세가 들어오면 나라는 망하는 법이다, 너희들 대에서는 반드시 파쟁을 뿌리뽑고 단결을 이룩해야 하고 민중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김형직 선생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독립운동 진영의 통일단결을 위해 애쓰다 고려혁명당의 창립을 보고서 192665일 망국의 한을 풀지 못한 채 만리타향 중국 땅 무송 하늘 아래서 세상을 떠났다. 김일성 주석은 아버지 김형직 선생으로부터 네 가지의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회고하였다. ‘지원의 사상, 3대 각오, 동지획득에 대한 사상, 두 자루의 권총이 그것이다.

지원의 사상은 뜻을 원대하게 가지고 대를 이어서라도 반드시 조국을 독립시키겠다는 사상이다. 3대 각오는 혁명가가 지녀야 할 각오로 아사, 타사, 동사, 즉 굶어 죽을 각오, 맞아 죽을 각오, 얼어 죽을 각오를 말한다. 동지획득에 대한 사상은 동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만이 좋은 동지를 얻을 수 있다는 사상이다. 두 자루의 권총은 아버지의 유물로 무장투쟁을 통해서만 조국의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는 사상의 상징이다.

결국 김일성 주석은 아버지가 남겨 준 두 자루의 권총으로 3대 각오를 가지고 동지들을 모아서 지원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항일무장투쟁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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