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뒤떨어지고 현실에 맞지 않는 국가보안법 체제와 한반도 유일합법정부론은, 유일한 공존형 남북평화 통일방안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누구도 원치 않는 남북 긴장고조와 무력통일 가능성을 부추겨서 대한민국 국가안보와 국민생활 안정을 갈수록 위협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일제로부터 나라를 잃었을 때 독립이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열망이었듯이, 나라가 외세로부터 분단되었을 때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숙제는 통일이다. 다음 세대는 평화 번영의 통일 강대국 시대에 반드시 살아야 한다.

나의 옥중 통일 이야기는 매주 재판이 끝날 때까지 계속 될 것이다.

이정훈 연구위원 옥중단상 원고 일부
이정훈 연구위원 옥중단상 원고 일부

 

조사 25일째, 서울구치소에서

 

62일 아침 종로서에서 서울구치소로 이송되었다. 20일간의 국정원, 경찰조사가 끝났고, 검찰조사가 시작되었다.

지난 경찰 20일 조사과정에서 나의 구속수사와 련관하여 새로 찾은 의미있는 증거는 없었다고 본다. 10여일만에 비밀번호를 알아내 열어본 내 아이폰 내용도 그저 그런 일상적 생활과 연구활동과 연관된 내용들 뿐일 것이다. 물론 내 컴퓨터에는 북한관련 1차 연구자료들이 다량 발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서 합법적으로 구한 자료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돌아보면, 나는 인멸할 증거를 가진 것이 없었던 것이다. 도주 우려는 더더욱 있을 이유가 없다. 구속영장에 도주할거라 여겼던 동료들은 전부 면회를 찾아와 구속이유를 의아해 했다. 경찰이 출석요청을 했다면, 찾아가 해명했을 사건을 왜 굳이 구속수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여하간 나는 23살 대학생 청년시절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으로 여기 처음 들어오고, 15년 전 2006년에도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이곳 서울구치소에 왔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여기는 그동안 얼마나 시설과 인권이 개선되었을까?

입소하는 첫 날 첫 순간부터 나의 기대는 산산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입소 첫 절차는 신원확인> 개인 소지물 압수 후 영치> 심신이상 확인> 검신(옷을 모두 벗기고 몸을 검사하는 과정) 등이다. 그동안 교도소에서 계속 인권문제가 되었던 것은 주로 검신과정이었다. 전두환 군사정권 때에는 입소자 10여명을 일렬로 세워놓고 팬티까지 전부 벗긴 채로, 교도관이 일어나 앉아를 반복케 하면서 검신을 하였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에 이런 비인권적 만행은 사라졌으나 여전히 관복을 입은 교도관이 입소자의 신체를 완전히 벗겨놓고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부분적 관행은 쉽게 근절되지 않았다. 이번 서울구치소 입소과정에서 보니, 입소자 속옷(팬티 속) 검사를 위해 따로 검신용 탐지기계를 마련하고 있었다. 검신과정에서 팬티를 벗어도 이는 촬영되지 않는다는 문구도 보였다. 이것까지는 개선되어 좋다고 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영치과정이었다. 입소자 모두 개인 소지품과 입은 옷을 전부 영치(개인소지품을 모두 교도소에 보관하는 것)시키는 과정에서 교도관이 책상에 앉아서 옷을 전부 벗으라는 것이다. 영치과정에서 왜 가림막도 없이 옷을 벗냐라고 하자, 다시 팬티까지 전부 벗으라는 것이었다. 한 교도관은 책상에 앉아서 나를 보고 지시를 했고 또 한 교도관은 내 옆에서 영치 보조역할을 하며 나를 보고 있었다.

순간 아, 아직 멀었구나, 저 검신기계는 왜 도입했는지 의아한 순간이었다. 솔직히 나는 수치심보다 분노가 먼저 일었다. 입소 순간부터 벌거벗고 이 놈들과 한판 떠야하는가, 순간 고민했으나 잠시 참기로 하였다. 대신 교도소의 모든 비정상적 행정을 다시 생생한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일이 앞으로 또 하나 주어진 나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난 번에 교도소에 들어왔을 때도 교도소가 법을 편법적으로 안 지키는 것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교도소부터 법을 지키라고 수없이 요청하였다. ‘양심수를 위한 수용자 처우에 관한 법이라는 일명 양심수 감방 길라잡이를 책으로 낸 적이 있다. 이번에 개정판을 내야 할 것 같다.

 

일단 서울구치소가 입소과정에서 검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려주어야 할 것 같다. 개선이 없다면 소송대상이 된다.

1) 입소과정에서 체포, 구속, 차후 재판관련 공식서류는 영치하지 말고 바로 지급해야 한다.

2) 검신과정에서 입소자 수치심을 유발하지 않게 검신 담당을 따로 배치하며 검신 기계를 활용하며 한다.

3) 영치과정은 검신과정이 아니다. 따라서 영치 담당 교도관이 그 앞에서 옷을 팬티까지 벗으라는 지시는 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새로운 관급 팬티와 런닝을 주고 가림막이 있는 장소에서 갈아입고 나오시라고 요청해야 한다. 현장에 가림막이 있으나 이들은 엉뚱한 곳에 가림막을 치고 있었다. 아마도 가림막을 치라는 지침은 있는 모양이다.

 

묻고 싶은 말이 있다. 이명박, 이재용, 박근혜가 이 구치소에 입소할 때, 이들도 이렇게 입소했는지 묻고 싶다.

 

잘하고 있는 것도 보였다. 교도관 말투가 지시체, 명령체, 반말들이 사라지고 경어체로 바뀌었다.

입소 절차를 마치고 1.75평 좁은 방으로 들어왔다. ~ 이 방으로 내가 다시 들어왔구나. 15일간 코로나 격리 사동에 있다가 일반 사동으로 옮긴다고 한다. 방의 크기는 대략 싱글침대 크기 정도로 보면 된다. 싱글침대 위 공간에서 하루종일 생활한다고 보면 된다. 서울구치소는 군사정부 시절 만들어져서 일제 형무소의 징벌적 하드웨어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큰 창이 있어서 계절과 바람과 하늘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서설이 너무 길었다. 이번에는 국가보안법 세 번째 이야기로, 이 법이 제 11항에 명시한 국가안전을 어떻게 이 법 스스로 위태롭게 하는지 알아보려 한다.

 

국가보안법이 적대적 냉전논리로 북을 국가나 정부가 아니라 반란단체(반국가단체)로 규정하며, 이것이 모든 비상식과 불행의 시작이라는 점은 지난 번에 얘기했다. 오늘은 남한은 정부이고 북한은 반란단체라는 규정과, 이 논리로부터 생겨난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는 비현실적 주장과 법적 규정은 전부 수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얘기하려 한다. 즉 한반도에는 통일과정에서 과도적으로 불가피하게 존재하는 남북 2개의 정부를 모두 인정하고, 그 방향에서 통일과 남북관계를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얘기하려 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국가보안법과 같은 적대적 대결 논리와 체제 대결이 계속된다면, 대한민국의 국가안보와 국민생활 안정은 크게 위협받을 것이며 군사적 긴장과 전쟁위기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게 될 것이다.

 

또 국가보안법과 대한민국 한반도 유일합법정부론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평화적 통일방안인 연방연합제통일 방안을 부정하고 있다. 연방연합제(또는 연합연방제) 통일 방안은 남북 정상이 합의한 6.15공동선언 2항에 기초한 유일한 평화통일 방안으로 나는 생각하고 있다.

 

정전협정 70년이 가까이 되면서 시대도 격변했고 세대도 바뀌었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남북을 동시에 합법정부로 인정하고 있다. 또 남북관계도 변화하는 현실에 맞게 서로를 상호인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현실적으로 정부로 인정하고 있으며, 북도 대한민국을 현실적 정부로 인정하고 있다. 그 결과물로 나타난 결실이 6.15선언, 10.4선언, 4.27판문점선언이다.

 

이미 모든 현실은 한반도에 존재하는 남북 합법정부를 사실상 인정하며 멀리 나간지 오래되었는데, 국가보안법과 헌법의 일부 조항은 여전히 70년전에 머물러 있다. 이것이 국민들의 법 상식과 정서에도 크게 괴리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국가보안법과 공안당국의 국가보안법 공소장이 70년 이상 앵무새처럼 외우고 있는 북한 대남 적화통일전략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남한의 통일방안 역시 점차 바뀌어왔다.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자.

 

남한도 자본주의 방식의 흡수통일 대신에 남북공존을 모색하는 연합제(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방안을 내놓기 시작했으며, 김대중 정부는 이러한 흐름의 한계를 약간 넘어선 6.15선언 통일방안까지 북과 합의했다.

남한이 그동안 주장한 연합제통일방안은 사실상 통일방안이라기보다는 남북이 분리된 독립국가연합에 가까웠다. 독립국가연합은 통일된 국가가 아니다. 분단된 남북 국가가 오히려 그대로 영구합법화 될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는 방안이다.

 

우리가 6.15선언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상호 정부를 인정할 뿐 아니라 북의 연방제와 남의 연합제가 갖는 공통성을 기초로 하나의 나라로 통일국가를 이루자는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국가보안법 공소장 공식인 북한의 적화통일전략의 허구성에 대해서 얘기하려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러한 북의 전략은 현실에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가능하지도 않은 허구적 개념이다.

 

적화통일전략이란 북한이 남한을 사회주의 체제로 전복해 통일한다는 전략, 즉 사회주의 제도 통일전략을 의미한다. 북이 현재 주장하는 통일방안은 적화통일방안이 아니라 연방제통일방안이다.

공안당국은 연방제 통일방안도 적화통일전략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다. 정확히 말하면 연방제 통일방안은 적화통일(또는 제도통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 제안한 남북 체제 공존형통일방안이다. 쉽게 말해 연방제 통일방안은 현존하는 남한 자본주의와 북한 사회주의를 그대로 공존시키며 하나의 나라 안에 각자 남북 자치정부를 두자는 합리적 제안이다.

연방제 통일방안이 적화통일전략이라거나, 위장평화 통일전술이며 숨은 목적이 따로 있다는 국가보안법 공소장의 앵무새 주장은 어떤 통일도 반대하는 분단 기득권 세력, 분단 영속주의자들의 궤변일 뿐이다.

 

다음은 한국진보진영의 사회운동과 통일방안 역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상당히 변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려 한다. 한국 진보의 통일 방안은 평화적 통일방안외에는 없으며 무력 통일을 수행할 의향이나 능력이 현실적으로 없다.

 

한국 진보는 대체로 남북체제 공존형 연합연방제통일에 동의하는 편이다. 한국 진보 중에 남한체제를 사회주의로 전복하여 북과 통일하자는 주장은 없으며 들어 본 적도 없다. 오히려 통일운동 자체에 관심이 없는 사회주의자나 진보세력은 좀 있는 편이다. 따라서 적화통일전략은 남북 어디에도 현실적 정치주장이나 세력으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이며 가상의 주장일 뿐이다.

 

나 역시 남한 적화통일, 즉 통일을 위해 남한을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치도 가능치도 않다고 생각한다. 즉 나는 적화통일 반대론자이며, 남북공존형 통일인 연방연합제통일 찬성론자이다. 크게 보면 남북 정상이 합의한 6.15선언 2항의 통일원칙을 가장 수준이 낮은 연방제 통일방식의 하나로 해석하고 지지한다.

 

다음은 한국 진보가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를 보는 관점이나 입장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정부 수립 당시 남로당은 남한 단독정부를 처음부터 부정하였다. 그러나 현재 이러한 관점, 즉 대한민국 정부의 정체성을 원천부정하고 체제 전복하려는 한국 진보세력은 거의 없다고 본다. 특히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 정권이 무너진 이후 세대가 바뀌고 민주화, 자주화 운동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체제전복 운동은 거의 사라지고 진보적 정권교체 운동으로 전환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2000년대 이후 한국 진보세력 중에서 내란또는 무장투쟁등 변란의 방식으로 정부를 전복하자는 주장이나 세력을 들어본 적이 없다. 대신 한국 진보의 투쟁목표와 방법도 선거대중투쟁중심으로 바뀌었다. 즉 대중투쟁과 선거를 통해 한국 정부를 좀 더 자주적이며 민주적 정권으로 교체하자는 흐름이 대세가 되었다. 부분적으로 대중투쟁을 강조하며 전 민중항쟁수준으로 대중투쟁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은 있어도 무장투쟁으로 정부를 전복하자는 주장은 2000년대 이후 들어보지 못했다.

즉 한국 진보의 주요한 정치노선은 대한민국 체제 전복이나 타도 전략과 무관하며, 대한민국 정부를 더 높은 수준의 자주적 정부, 민주적 정부로 교체 전환하자는 노선이다. 그리하여 유일한 평화통일 방도인 연방연합제 통일을 평화적으로 실현하자는 입장이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현실에 맞지 않는 국가보안법 체제와 한반도 유일합법정부론은, 유일한 공존형 남북평화 통일방안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누구도 원치 않는 남북 긴장고조와 무력통일 가능성을 부추겨서 대한민국 국가안보와 국민생활 안정을 갈수록 위협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한반도 주변 강대국 어느 나라도 남북 통일을 바라는 나라는 없다. 특히 미국은 한반도 분단의 장본인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우리의 통일을, 즉 새로운 통일 강대국이 출현하는 것을 달가와 하지 않는다.

 

일제로부터 나라를 잃었을 때 독립이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열망이었듯이, 나라가 외세로부터 분단되었을 때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숙제는 통일이다. 다음 세대는 평화 번영의 통일 강대국 시대에 반드시 살아야 한다.

 

나의 옥중 통일 이야기는 매주 재판이 끝날 때까지 계속 될 것이다.

 

  • 추신: 감옥으로 전자우편 서신을 보내주신 많은 분들게 감사인사 드립니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2021.6.8. 서울구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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