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이 된 중국 혐오

역사적인 경험으로 보면 전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눈앞에서 맹목적으로, 광범위하게 펼쳐지고 있다. 한국인들은 왜, 언제부터 중국을 혐오하거나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됐는가? 한국인들 상당수는 36년 동안 악랄한 식민통치를 했고 지금도 그 식민통치 역사를 왜곡, 미화하고 군국주의 책동을 계속하고 있는 일본 보다 중국을 더 혐오하는가? 날이 갈수록 중국 혐오는 더 깊어지고 있는데, 급기야 한국사회의 반중혐오는 일시적 조류를 넘어 보편적인 ‘시대정신’이 되었다. 

2021년 한국은 ‘반중(反中)’으로 뭉쳤다. 작게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중국 소품 사용부터 크게는 한·미 정상회담 문구 하나까지, 중국과 관련한 모든 이슈에 극렬하게 반대하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중국이 싫다’라는 감정이 단언컨대 시대정신으로 떠오르는 중이다.(이오성 기자, “중국의 모든 것을 싫어하는 핵심 집단, 누굴까?”, 시사인, 2021.06.17.) 

호감도 조사를 보면, “미국이 57.3도로 가장 높았고, 일본 28.8도, 북한 28.6도였다. 중국이 26.4도로 가장 낮았다. 주변국 ‘사람’에 대한 응답에서는 온도차가 더욱 커졌다. 북한 사람(37.3도), 일본 사람(32.2도)보다 중국 사람(26.3도)에 대한 호감도가 확연히 낮았다.”(같은 기사) 심지어 “응답자 58.1%가 중국이 ‘악’에 가깝다고 답했다. ‘선’이라는 응답은 4.5%였다.”(같은 기사)는 조사 결과에서 보듯, 중국은 악의 제국이 되었고 중국인들은 악마가 되었다. “온라인에선 중국 혐오가 놀이처럼 이뤄”(“한국 사회의 ‘중국 혐오’를 파헤치다”, 국민일보, 2022-04-28)질 정도로 잔혹하게 일상화 되었다. 중국혐오는 같은 동포인 조선족에 대한 극단적인 멸시와 비하로 나타나기도 한다.

2021년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집권 이후 한국에서 미국에 대한 호감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국가별로 미국에 대한 우호적 시각 응답은 한국이 77%로 전년보다 18%포인트 올라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이탈리아(74%), 일본(71%), 프랑스(65%), 영국(64%) 순이다.(“바이든 취임후 미국 호감도 급상승…16개국서 62% 美에 우호적”, 뉴시스, 2021.06.11.)

그런데 중국 혐오는 이른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모두 비슷하다.

진보와 보수로 나눠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중국에 대한 감정 온도는 진보(26.9도), 중도(26.7도), 보수(26.7도)가 모두 비슷하게 차갑다.(시사인, 같은 기사)

청년층에서 유독 중국 혐오가 두드러진다. 

대다수 한국인이 공감하는 반중 정서는 세대에서 드라마틱하게 갈린다. 특히 20대에서 두드러진다(〈그림 10〉 참조). 20대의 중국에 대한 감정 온도는 15.9도로 40대(28.3도)나 50대(30.8도)에 비해 절반 가까이 떨어진다. 30대도 21.8도로 전체 평균 26.4도보다 낮다. 2030 세대가 반중 정서를 이끌어가는 핵심 집단이라는 결론이 나온다.(시사인, 같은 기사)

도대체 중국을 혐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처럼,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사소한 생활상의 문제들로부터, 중국의 사회 현상들, 중국의 정치적, 역사적 문제들, 중국의 체제에 이르기까지 한 마디로 중국의 모든 것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이쯤 되면 중국과 중국인들이 숨만 쉬어도 적개심을 표출할 정도가 되었다. 특히 “중국에 대한 한국의 부정적인 언론보도”처럼, 언론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데, “한국에 대한 중국의 부정적인 언론보도”조차도 대개는 언론에서 일방적으로 보도하는 것으로 한국에 편파적인 방식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욱이 ‘언론보도’가 하나의 설문 문항으로 들어가 있지만, 위의 부정적인 인식들 모두가 실은 언론에서 다루는 주제이기 때문에 중국 혐오증은 언론이 반중혐오 조장에 적극 나선 결과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청년들에게서 반중혐오 감정이 만연한 것은 청년세대가 1980년대 반미의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지 못한데다가, 한국사회 전반이 친미반공주의 일색으로 후퇴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 시대의 지배적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라고 하는데, 사실 지배계급의 사상은 부르주아 계급에게는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계급적 처지, 이해관계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되기도 한다. 하지만 민중 대다수에게 나타나고 있는 당대의 지배적 여론, 인식, 감정들은 지배계급의 교육, 종교, 언론 등에 의해 적극 조장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제국주의 언론과 그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는 부르주아 언론 기관들이 지배계급의 사상을 유포하는데 가장 선두에 서 있다. 
중국에 대한 위의 부정적 요소들 중, ‘미세먼지’ 중국 책임론은 “당시 베이징 공기 정화를 위해 그 지역 공장들이 한반도와 가까운 산둥성 지역으로 이동했다는 루머가 인터넷상에서 폭발적으로 퍼지며 반중 여론이 들끓었다.”고 하는 것처럼, 중국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부정적인 환경적 문제들을 의도적인 문제로 부각시킨 결과 생겨났다. 더욱이 몽골이나 중국 북부에서 자연스럽게 날라 오는 황사같이 자연적 현상까지도 중국 탓으로 돌리면서 더욱 조장되고 있다. 
“중국의 코로나 19에 대한 대응”에 대한 적대적 감정은 코로나 발발 초기 ‘우한 폐렴’이라고 하여 언론들이 앞장서서 중국 혐오를 조장한 결과 생겨났다. 이로써 중국은 기존의 적대감정에 더해 박쥐를 먹는 미개한 민족이며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 세계에 전파하여 전 인류를 고통에 빠트리는 용서할 수 없는 나라로 다시 한 번 인식되게 되었다. 실제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시작됐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최근 아시아, 태평양계에 대한 증오범죄가 300% 이상 늘어났다. 한국에서 극우언론의 지지 속에서 신세계 극우파쇼 정용진의 “난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해시태그 난동과 미국 내 “중국으로 꺼져라”, “중국 공산당(communist China)한테로 꺼져라”라는 반공주의, 인종주의와 급증하는 증오범죄는 깊이 연결되어 있다. 
불법조업의 문제는 남북 간에도 해상 영유권 문제로 심심찮게 벌어지는 문제이며, 중국과 한국 모두가 상호 간에 책임이 있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기도 하다. 
“중국 누리꾼의 혐한 표현”은 한국사회에서 거대하게 나타나고 있는 반중 적대감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나타나는 개별적 문제일 수 있다. 중국의 공식적 언론 보도가 아닌 개별적인 누리꾼들의 혐한 표현을 보도하여 중국 적대감을 조장하는 것도 사실 한국 언론이다.
“양안관계(중국-타이완 갈등)”는 중국의 내정문제인데다가, 역사적으로 국민당이 미국을 등에 업고 대만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생겨났다. 홍콩문제 역시 그 역사적 출발은 영국의 홍콩 식민지 지배로부터 발생했다. 

“중국의 6.25참전”의 문제는 해방 이후 미제가 일제를 대신하여 한반도 이남을 점령한 상태에서 반북, 반중국, 반쏘비에트의 전초기지로 삼으려는 문제들로부터 비롯됐다. 남과 미국에서는 이를 북과 중국의 침략전쟁으로 보고 있지만, 북에서는 조국해방전쟁, 중국에서는 북과의 형제국, 혈맹으로서 반미 조국해방전쟁 지원전으로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 역사적인 문제기도 하다.   
사드보복의 원인은 두 말할 나위 없이 미국의 강압에 의해 중국과의 군사적 대립을 부각시키는 사드를 도입한 박근혜, 문재인이 제공했다.
천안문 사태는 1989년 동유럽과 쏘비에트가 해체되는 격동의 시점에 나타난 사건으로 중국이 존립하느냐 동유럽과 쏘련처럼 해체되느냐의 갈림길에서 벌어진 문제로 기본적으로 중국의 내정문제에 해당된다. 이 격동의 시기에 벌어진 천안문 사태에 대해서도 상당부분 서방 언론들에 의해 사태가 일방적으로 보도되거나 과장된 측면도 있다. 특히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이 천안문 사태나 홍콩시위나 신장위구르 문제에 대해서 그때나 지금이나 “민주주의와 인권” 기치를 내걸어 간섭을 일삼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문제다.
문화대혁명은 ‘홍위병’으로 상징되는 부정적 인식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중국사회주의 건설 시기에 나타난 문제들로서 기본적으로 중국 내 수정주의의 대두와 맞서 싸운 거대한 정치투쟁이자 사회주의 문화혁명의 문제들이다. 스탈린의 ‘숙청’에 대해 그런 것처럼, 문화대혁명 은 그 역사적 의의는 사라지고 제국주의 프로파간다에 의해 과장, 왜곡되어 알려지고 있다. 문화대혁명이 당적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전개되지 못하고, 일부 극단적 편향의 사례들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서방 제국주의 진영과 이를 일방 추종하는 한국사회의 평가는 반공주의적이고 일방적이고 편향되었다. 
“중국의 정치사회 체제의 문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반공주의의 일환인데, 공산당이 통치하는 중국체제는 일제의 중국 지배와 중국 봉건제에 맞서 “중국민이 찾아낸 최적의 제도”로서, “입헌군주제에서 다당제,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그들은 모든 것을 시도했지만 불행히도 이들 중 어느 것도 중국이 스스로를 보호하고 혼란을 끝내는 데 효과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김남중 선임기자, “한국 사회의 ‘중국 혐오’를 파헤치다”, 국민일보, 2022-04-28)고 볼 수도 있다.

진보적 반미감정에 비해 반중은 조장된 배외주의 감정

위 중국에 대한 부정적 요인들 중 ‘동북공정’ 같은 중국의 ‘역사왜곡’ 문제는 어떻게 한국인들 사이에서 중국혐오를 가지는 요인이 됐는가?

중국의 동북공정 탓에 대한민국이 또 한 번 뒤집어졌다. 지난 2004년 동북공정 프로젝트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고구려사를 삼키려 드는 중국의 무서운 음모'에 온 국민이 분노한 지 2년 만이다...
2년의 성과물로 고구려를 중국의 소수 민족으로 규정한 논문이 알려지자 일부 언론들은 이를 '역사 침략'으로 규정했고 이 '역사 침략'이 '영토 침략'으로 이어질 것을 심히 우려하고 있다. 북한을 호시탐탐 노리는 중국 정부가 '유사시'를 대비해 역사부터 고쳐두고 있는 것이며 '침략의 대상'에는 북한뿐 아니라 한강 이북이 모두 포함돼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희교 교수는 "언론과 정치권이 동북공정 문제로 호들갑을 떠는 구도 속에는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에 대한 불안감이 잠재돼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전시 작전통제권환수 방침을 밝히는 등 미국으로부터 유연해 지려는 노력을 보인 점을 동북공정 논란의 '도화선'이라 지적했다.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하다는 평가가 나올 때마다 '그렇다면 중국과 함께 가는 거냐'는 질문이 뒤따르는 사회 환경에서, 미국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 세력들이 중국의 위험성을 부각시키기 시작했고 자연히 여론도 '그래도 중국보다는 미국이 낫다' 쪽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주장이었다.(이지윤 기자, "'동북공정' 논란 뒤엔 '한미동맹' 족쇄가…" 전문가들 "국내정치용 민족주의 자극은 '이제 그만'", 프레시안, 2006-09-08)

중국의 “‘침략의 대상’에는 북한뿐 아니라 한강 이북이 모두 포함돼 있다는 주장”은 북의 붕괴설에 근거를 둔 것으로, 북이 중국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자주적인 국가라는 점을 간과하고, 조중 역사에 대해 무지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한강 이북을 영토적으로 침략할 것이라는 주장도 앞의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 한 아무런 근거가 없는 소설 같은 얘기에 불과하다. 더욱이 ‘동북공정’ 제기가 중국의 역사왜곡에 반대하여 한국의 자주성을 세우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는데, 정작 자주성을 전면 유린하는 미국은 일방적으로 추종하고, 식민 지배 역사를 왜곡하고 군국주의 책동을 계속하는 일본 제국주의와의 군사적 동맹을 부추기고 있는 미일한 동맹을 절대적 가치로 떠받드는 이율배반적 태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또한 그를 통해 같은 민족인 북을 고립 말살시키며 북의 자주성을 유린하는데 동참하면서 유독 중국으로부터는 ‘자주성’을 외치는 이중적인 행위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결국 중국의 ‘동북공정’ 역사왜곡 논란은 역사의 진실을 바로잡고 진정한 ‘자주성’을 염원하려는 의도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 반대로 ‘동북공정’ 논란을 통해 미제국주의에 대한 노예화를 영속화 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전시작전통제권’처럼 군사적 자주권의 문제가 불거지는 시점이거나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하다는 평가가 나올 때”처럼, 특히 국내에 반미정서가 불거질 때마다 반중혐오가 의도적으로 조장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 세력들”이 중국과의 적대감을 고취시킴으로써 한미동맹의 가치를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혐오가 깊어질수록 전통적인 ‘한미동맹’만이 악마와 같은 중국을 견제하고 중국으로부터 한국을 방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다. 중국이 악마가 되면 될수록, “그래도 중국보다는 미국이 낫다”는 여론이 먹혀들기 쉽기 때문이다.
멀리는 제주 4.3학살과 여순학살로부터, 가까이에는 광주학살 배후에 미국이 있고, 역사적으로 분단의 원흉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폭발적으로 생겨난 반미감정은 1980년대의 시대정신이었다. 이후에도 반미감정은 미군범죄, 여중생 장갑차 압사 사건, 대추리 평택미군기지 이전문제, 미군기지 오염문제와 세균실험실 문제, 미국 최첨단무기 수입 강요, 주둔비 인상, 한미연합훈련, 남북관계 진전의 반대와 전쟁위기 조성 등으로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서 반미감정은 역사적으로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당연한 대중적 인식이고 진보적인 감정이다. 반면 중국에 대한 한국사회의 적대적 배외주의와 미제국주의에 대한 무조건적 숭배감정은 역사적 경험 속에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감정, 인식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과 정반대로 부르주아가 언론, 교육, 문화, 종교(특히 극우 개신교 등) 등을 내세워 조장된 감정, 인식이다.
미국은 국제적으로도 미중 대결을 고취시키면서 반중 적대감을 조장하고 있다.

국제사회, 특히 미국은 중국의 약한 고리를 집중 타격하고 있다. 6월13일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각국 정상들은 중국의 신장·홍콩·타이완·남중국해 정책을 비판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중국의 ‘일대일로’에 맞서는 새로운 파트너십도 구축하기로 했다.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에 G7의 자본을 투입함으로써 이들 국가가 중국과 손잡을 필요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요구했던 대중국 강경 노선을 각국 정상이 대부분 수용했다는 점에서 큰 이슈였다. 중국은 G7과 미국을 겨냥해 “내정간섭이다. 소수의 나라가 국제질서를 정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의 부상에 발맞춰 차근차근 진행해왔다. 2018년 미·중 무역전쟁은 그 변곡점이었다. 무역전쟁의 승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미국이 더욱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리라는 점이다.(이오성 기자, “중국에 대한 반감, 그 반대편에 친미가 있다”, 시사인, 2021.07.12.)

이처럼 제국주의 국가들은 약한 고리운운하며, 중국 내정에 개입해 자주성을 말살하고 궁극적으로 중국의 민족갈등을 부추겨 분리독립 시키고 중국을 해체시키려 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미제 중심의 서방 제국주의 일극체제에 도전하여 부상하려는 것을 막기 위한 제국주의 패권의 일환이다.

민족과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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